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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15. 6. 20. 17:07

2015.06.20.

사랑니를 뽑았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하나씩 있는 것도 모자라 왼쪽 아래에는 무려 두 개나 자리하고 있단다. 사랑니 부자라니, 진화가 덜 되도 한참 덜 되었나보다. 

 뽑기 전엔 이렇게 아픈 건지 몰라서 꽤나 용감하게 예약을 하고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치과로 향했다. 마취주사까지도 괜찮았는데, 우지직 우지직 깊숙히 숨어있는 이를 조각내고 부러뜨리고 들어내는 동안 내 턱관절이 부러지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뽑고 난 후에는 약간의 쇼크와 덜 풀린 마취 때문에 통증을 느낄 정신이 없었지만,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왼쪽 볼이 농구공만 하게 부풀어 오르고 몸살처럼 몸 전체가 열이 나고 욱신거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랑니라고 하는구나.

 인간은 간접경험을 통해도 배울 수 있는 고등 동물이지만, 역시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랑니를 뽑는 아픔은 내가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육체적 고통이 분명했다. 예전엔 사랑니라는 단어를 노래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떠올린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볼이 부어오른 사람들 혹은 마스크나 냉찜질팩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을 보면 성형보다 사랑니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니 발치 예약을 한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낼 것이다. 냉찜질과 온찜질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조언도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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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뽑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모든 약속과 일정을 취소하고 며칠 간 꼼짝없이 집에만 있었다. 첫날엔 아프면서도 좀이 쑤시고 멍하고 지루하기만 했는데,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영화와 책들을 하나 둘 씩 챙겨보고, 잠이 오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아픈 입은 꼭 다물어 말을 아낀 채 느긋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소한 감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오후 멍하니 정원을 내다보며 햇빛 색깔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폭 안겨 새근새근 잠자는 강아지의 말랑따끈한 체온, 차분한 빗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 등 오감으로 느끼는 자극부터,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더 하고싶어지는 사람 마음의 간사함 (생전 생각도 안 나던 탕수육, 볶음면 등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왜 한꺼번에 그렇게 먹고싶던지), 내 몸 구석구석의 소중함 (입을 제대로 벌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등 조금은 더 형이상학적인 생각들까지 - 소소하지만 잊고 있던 것들에 마음껏 침잠하여 고요히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이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이 외롭고 지루하고 낯설었는데, 이틀 째가 되니 그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필요없는 많은 외부 자극에 푹 절여져 있었는지, 얼마나 부질없이 분주하기만 했는지 깨달았다. 진정한 휴식은 마음을 담백하게 해준다. 그리고 바보같은 나는 아직까지도 아플 때에만 - 그래서 모든 신체 활동이 어쩔 수 없이이 음소거되어야할 때에만 - 비로소 그러한 휴식을 느낀다. 아, 스페인 포르투칼을 여행했을 때에는 몸 건강히 그러한 휴식을 즐겼었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알사탕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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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집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처음엔 조금 밋밋했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늘 꽃을 보고, 가끔 부모님을 도와 정원을 가꾼 경험이 있었기에 이러저러한 식물과 원예 이야기로 시작되는 서두를 포기하지 않고 붙들 수 있었지만, 왠지 노년의 헤세의 감성이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은 거만한 의심을 품고 짤막한 에세이들을 읽어나갔다. 대문호 앞에서 감히 주름을 양껏 잡은 셈인 것이다. 어딜가든 꼭 들고가고 싶을 만큼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는 책인 줄도 모르고. 

 몇몇 에세이는 그야말로 한 줄 한 줄을 다 옮겨놓고 싶을만큼, 마음이 아리도록 공감할 수 있었다. 인류가 구름 뭉텅이처럼 느끼고 지나가는 감정들을 어떻게 이렇게 한 올 한 올 crystal clear하게 문장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걸까. 가장 날카로운 핀셋을 들고 한 겹 한 겹 감정을 해체해 옮겨놓은 이 작가의 영혼은 얼마나 예민하고 투명하고 또 아팠을까. 언젠가 카카오 스토리에 옮겨놓았던 문구가 생각났다. "It is both a blessing and a curse to feel everything so very deeply."

 개인적으로 에세이들 중 <잃어버린 칼>, <잠 못 이루는 밤들>, <작은 기쁨>이 정말 좋았다. 나중에 몇몇 부분만이라도 발췌해서 꼭 포스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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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6. 1. 23:35

2015.06.01.

외로움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밤공기가 있다.

카페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혼자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던 중 왠지 입이 궁금하여 무엇을 좀 더 먹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학부 시절 애매한 시간 애매한 배고픔을 무엇으로 달랠까 고민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참 혼자였던 순간이 많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와 어제 남은 미역국을 시크하게 먹으며 가족들과 이야기하면 그만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 땐 괜시리 춥고 멋쩍고 쓸쓸한 마음으로 별 것도 아닌 허기를 달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시간은 정직하다. 와야할 날은 오고야 만다.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 8월이 될 것이고,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 일주일이 찾아올 것이고, 마지막 하루가, 마지막 아침이, 마지막 한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지금도 그 때 기분을 떠올리면 마음이 내려앉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파도가 오면 타고 넘어야지 별 수 있나. 찾아오는 두려움 외로움을 애써 부정할 것도, 애써 잊으려할 것도 없이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 타넘어야지. 자신감과 기대감으로 조금씩 바꿔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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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drops on roses and whiskers on kittens
Bright copper kettles and warm woolen mittens
Brown paper packages tied up with string
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Cream colored ponies and crisp apple strudels
Doorbells and sleigh bells and schnitzel with noodles
Wild geese that fly with the moon on their wings
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Girls in white dresses with blue satin sashes
Snowflakes that stay on my nose and eyelashes
Silver white winters that melt into springs
These are a few of my favorite things

When the dog bites
When the bee stings
When I'm feeling sad
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And then I don't feel so bad

(Repeat all ve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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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2015. 3. 30. 05:48

2015.03.29.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법도를 주시고, 성실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율례들을 성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내 길을 탄탄하게 하셔서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의 율례들을 지킬 것이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찬송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들을,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나는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주님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종을 너그럽게 대해 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활력이 넘치게 살며,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주님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볼 것입니다. 나는 땅 위를 잠시 동안 떠도는 나그네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나에게서 감추지 마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의 율례들을 늘 사모하다가 쇠약해졌습니다.

고관들이 모여 앉아서, 나를 해롭게 할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은 오직 주님의 율례를 묵상하겠습니다. 주님의 증거가 나에게 기쁨을 주며, 주님의 교훈이 나의 스승이 됩니다.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구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내가 걸어온 길을 주님께 말씀드렸고, 주님께서도 나에게 응답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성실한 길을 선택하고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증거를 따랐으니, 내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면,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인도하는 길로 달려가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율례들이 제시하는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언제까지든지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법을 살펴보면서, 온 마음을 기울여서 지키겠습니다.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의 길을 활기차게 걷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맺으신 약속, 주님의 종에게 꼭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규례는 선합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비난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새 힘을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주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내게 베풀어 주십시오. 그 때에 나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 응수하겠습니다. 내가 주님의 규례들을 간절히 바라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율법을 늘 지키고, 영원토록 지키겠습니다. 내가 주님의 법도를 열심히 지키니, 이제부터 이 넓은 세상을 거침없이 다니게 해주십시오. 왕들 앞에서 거침없이 주님의 증거들을 말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 됩니다. 주님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하기에, 두 손을 들어서 환영하고, 주님의 율례들을 깊이 묵상합니다. 주님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내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언제나 나를 혹독하게 조롱하여도, 나는 그 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옛부터 내려온 주님의 규례들을 기억합니다. 그 규례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악인들이 주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덧없는 세상살이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동안, 주님의 율례가 나의 노래입니다. 주님, 내가 밤에도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님의 법을 지킵니다. 주님의 법도를 따라서 사는 삶에서 내 행복을 찾습니다. 주님, 주님은 나의 분깃, 내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다.

주님께서 손으로 몸소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세우셨으니, 주님의 계명을 배울 수 있는 총명도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기에,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기뻐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판단이 옳은 줄을, 나는 압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주님께서 진실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주님의 종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 주님의 법이 나의 기쁨이니, 주님의 긍휼을 나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새 힘을 얻어 살 것입니다."

- 시편‬ ‭119‬:‭4-20, 23-57, 73-77‬ RNK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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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고백이 구구절절 마음을 울린다. 몇천년전 누군가가 마치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듯한 기도를 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경외스럽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곧 기도와 말씀을 사모하는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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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더욱 밝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넘치는 사랑을 주는 기쁨을 알게 해주고, 온 마음을 채우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감사함과 용기를 동시에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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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3. 29. 11:02

2015.03.28.

언제 어디서든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해지고 싶다. 그래야만 길고 긴 시간을 혼자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따뜻함은 남겨두고 말랑말랑함만 걷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이 본질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팍팍함 없이 단단해지게 해주세요. 감사하고 반성하는 마음 간직하게 해주세요. 잊어야할 것들은 흘려보내고 잊지 않아야할 것들은 마음 깊이 새기는 지혜를 주세요. 주변을 돌아보며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랑과 여유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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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3. 6. 15:51

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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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15. 2. 18. 01:40

2015.02.18.

며칠간은 시차적응 때문에 고생을 좀 할 것 같다. 오늘도 낮잠을 두시간 반이나 잤으니..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도 말짱하기만 하니 오늘도 잠은 네다섯시에나 들려나보다. 간만에 조용히 혼자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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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있어 여행의 의미는 '용기'이다. 바쁜 일상과 당면 과제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 듣고 먹고 걸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집채만하게 느껴졌던 문제는 제 크기를 찾게 되고,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마음 구석구석이 풍성하게 차오른다. 또한 이리저리 부딪히고 헤메면서 세상은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들로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상황이 변하는 건 없지만 잃었던 용기를 되찾는 것. 그게 내게 있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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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주간의 여행은, 뭐랄까, 정말 꿈만 같았다. 꾹 눌려있던 용수철이 엄청난 속도로 튀어오르듯이, 나는 그 시간 내내 정말 날아갈 듯 가벼웠다.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감사했다. 바싹 마른 스펀지가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이듯 내 마음이 정신없이 아름다움과 생기와 기쁨을 한없이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비록 정말 힘들었지만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음에 누릴 수 있는 자유.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 뿐 아니라, 이 모든 자극을 가슴깊이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길러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감사할 것 투성이었고, 순도 200%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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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행의 또 한 가지 테마는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운 건축물에, 풍경에, 공연에, 사람들에 푹 빠져들면서, 미술사학도로서 내가 사랑했던 '미'가 주는 본질적 행복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메세지의 홍수인 현 사회가 필요로하는 건 알함브라 궁전의 성스러울만치 섬세한 장식과 같은, 아무런 메세지도 담기지 않은 (혹은 그 메세지가 매우 절제되어 아름다움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닐까. 현재 예술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해보고 싶은 주제이다. 왜 사람들이 바빠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 문화생활을 하려고 하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접하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건강한 마음을 위한 필수사항. 앞으로 꼭 주기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겨야지. 미술이든, 음악이든, 자연탐방이든, 무엇이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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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함께 한 언니와의 깊은 대화도 이번 여행의 행복을 완성해준 하나의 축이었다. 원래부터 밝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맑고 귀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3살이나 어린 동생이지만 늘 존중해주고, 칭찬도 충고도 아낌없이 해주는 진심어린 언니의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기쁨과 슬픔을 진심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없다는 사실을 알 만한 나이가 되어서, 이렇게 서로 사심없이 기뻐하고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미스터땡땡이장미언니 고마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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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와의 대화는 언니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밤에, 처음으로 맛이 없었던 타파스(딸기크림을 곁들인 까망베르 튀김 + 가스파쵸)와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를 설명하는 형용사를 휴지에 쭉 적어내렸다. 언니가 선택한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예쁜
오밀조밀한
분석적인
긍정적인
합리적인
멋있는
상큼한
단호한
어른스러운
반짝반짝한
늘씬한
견고한, 단단한
환한
고급진
믿음직스러운
적극적인
당당한
복잡한
섬세한
똑부러지는
현명한
사리분별에 능한
쳐다보게 되는
호감가는
불타는 사랑을 하고싶어하는
23도 같은
Paris
전형적이지 않는
알함브라 궁전같은
아보카도같은
살구색
백합 
English breakfast tea latte

 언니가 물론 좋은 면만을 써준 것이기에 엄청나게 좋은 쪽으로 biased 되어있는 기록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리스트를 통해 사람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어떤지, 그게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self image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무릎을 치게 하는 형용사들도 몇 개 있었고 (23도 같은, 분석적인, 복잡한), 들어서 정말 기분 좋은 형용사들도 있었고 (대부분, 특히 멋있는, 환한, 고급진, 호감가는, 전형적이지 않은, 알함브라 궁전같은), 알쏭달쏭한 형용사들도 있었는데(아보카도같은, Paris, 살구색, 백합), 어찌되었든 남이 보는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나 자세하게 탐구해보는 게 처음이어서 재밌었고, 언니가 나를 이해하는 깊이가 남다름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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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여행에 너무 푹 빠져있던 바람에 여행지에서 치뤘던 인터뷰와 합격소식은 오히려 양념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인터뷰를 통해 느꼈던 전율과 합격 이메일을 읽고 느꼈던 무한 감사는 여행의 기쁨과 어우러져 더욱 잊지못할 순간들이 되었다. 절대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게 내 행복의 코어가 아님을 깨달은 걸까. 내가 걱정했던 진공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많이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이것도 조만간 기록으로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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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 무한하다고 느켰던 순간. 내 안에 다른 감정 하나 없이 오직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응원하고 위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만 가득찼던, 그 환했던 순간의 가슴벅찬 행복은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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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2. 2. 17:30

2015.02.02.



"This photograph is my proof. There was that afternoon, when things were still good between us, and she embraced me, and we were so happy. It did happen. She did love me. Look see for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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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2015. 1. 24. 10:41

2015.01.24. - 답장(폰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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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1. 11. 19:13

2015.01.11.

허전함을 채우는 데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스스로 채워나가야만 한다는 굳은 의지. 이룬 것이 없고, 끝난 것이 없고, 설레는 것이 없는 이 상황 속에서 책으로, 공부로, 운동으로, 음식으로 내 시간들을 촘촘히 메꿔나가고 있다. 나쁜 생각이 성긴 그물 사이로 스며들어오지 못하도록.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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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1. 6. 20:13

2015.01.06.

바바바 Everybody Dance 춤을춰봐 모든걸 잊고

세상속에 답답햇던 일 벗어버려 소리 높여봐 고함을 질러버려 

Everybody Dance 세상살이 걱정하지마

음악속에 몸을 맡긴 채 Twist King 예~


가슴이 답답하면 우리처럼 춤을 춰봐

(신나게 추는거야 비벼대고 흔들어대고)

마루바닥, 비닐장판, 운동화든 맨발이든

(상관말고 추는거야 리듬속에 몸을 실어)


시원하게 바람을 맞았다면 나와함께 춤을 춰

되는일이 없다고 투덜투덜 대지말고 춤을 춰


매일 지친 하루의 두려움. 나를 힘겹게 할 때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입맞춤보다 더 짜릿한 춤을 춰봐


세상이 이리저리 꼬였다고 열받지마

(사랑이 떠났다고 슬퍼하고 노여워마)

나처럼 히프, 허리, 머리, 모두 흔들어대고

(다같이 좌로우로 리듬속에 몸을 실어) 


길을 걷다 음악이 들려오면 무조건 춤을 춰

상관치마 난 이제 누가 뭐라 해도 춤을 출거야


음악이 너무 작은 것 같아. 볼륨을 찢어지게 높여줘

더덕더덕 붙여있는 세상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싶어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고 싶어. 나처럼 손뼉치며 춤을 춰봐

또다른 환상이 보일꺼야. 가슴까지 시원한 춤을 추는거야

춤추는 우린 모두다 Twist King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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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모여서 앉으면 추억팔이를 하고, 그 때가 더 좋았다며 그리워한다. 토토가를 보면서 90년대 노래가 진짜 좋았다고 얘기하는 나 자신이 새삼 낯설기도 했지만, 내가 속해있는 세대와의 끈끈한 유대감과 자랑스런 소속감에 왠지 모르게 목울대가 뜨끈해지기도 했다. 언젠가 내 나이 또래 사람들과 "야 그 때 그랬었잖아~ 그 때 ***는 진짜 최고였지" 하며 웃고, 그 얘기를 듣는 어린 친구들이 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겠지. 전에는 그저 소위 '신세대'에서 벗어난다는 게 괜히 울적하고 아쉬웠는데, 이제는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감사하다. 우리 한 명 한 명 열심히 살아 여기까지 왔구나. 그 때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다른 빛깔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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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정말 마법과도 같다. 달라진 건 없지만, 많은 짐이 덜어졌다. 여전히 어려운 일, 해결되지 않은 것, 그리고 마음아픈 일 투성이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어. 밝고 해사한 호빵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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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푸는 것이 너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를 위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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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