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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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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6. 6. 24. 11:07

2016.06.23.

가족들로부터 조금 이른 생일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요즘은 감정이 메마른 듯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다가도 툭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엄마, 아빠, 언니, 하고 혼자 나지막히 부르기만 해도 목울대가 뜨끈해진다. 세상 없이 외로워지면서 또 세상 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에 나 혼자 남는 날이 온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전히 살아남고 싶을까. 내 갑옷은, 내 단단함은, 내가 하루 하루를 살아낼 힘은, 오로지 사랑에서 온다.    


세상 어딘가에 이렇게 따뜻한 존재로 있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만큼 그리워지고 편안해지는 집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낳아주시고 먹여주시고 길러주신 거, 그보다 엄마로서 아빠로서 언니로서 그 자리에 있어주신 게 제일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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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잘 살아내고 있는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서 놀러왔다는 친구의 말에, 오랜만에 마음에 훈기가 돌았다. 참으로 고마운 우정이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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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감정들이 죽은 물고기가 되지 않도록, 나는 나 자신을 돌볼 책임과 의무와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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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6. 4. 25. 10:20

2016.04.24.

기어코 감기가 걸려 이틀을 꼬박 앓았다. 어제는 정말 하루종일 잠만 잤는데, 오늘은 그래도 그렇게까지 잠이 오지는 않는 걸 보니 슬슬 나으려나보다.  몸이 덜 힘들어지니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차라리 정신없이 잠만 잘 때가 마음은 더 편했는데. 

지난 두 학기동안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자주 아팠던 와중에, 나를 살뜰히 챙겨주지 않는다며 너에게 참 많이도 서운해하고 투정도 많이 부렸었다. 넌 힘겨워하면서도 늘 미안해하며 앞으로 더 잘 챙겨주겠다고 했었지. 그 때는 투정부릴 수 있는 네가 지구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런 투정을 네가 당연하게 받아준다는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걸 몰랐던 것 같다. 난 네게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했었지만, 네가 주는 건 고마움과 미안함 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내게 주는 건 단순히 고마움과 미안함을 넘어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감싸주는 따뜻함이었었다. 

언제부턴가 그 따뜻함을 네게서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건 온전히 너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변했다고, 나를 품어줄 여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저 눈을 감았던 건 아닐까. 난 무엇이 그렇게 아프고 서럽고 억울하고 두렵고 화가 나서 눈을 감아버렸을까. 그저 내 삶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에서 다 도망쳐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모든 감정이 다 지나고 나버린 지금, 남은 건 그저 너무 아름답고 따뜻했던 그 때의 시간과 지금의 허전함 뿐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내 인생 처음으로 확신을 가졌던 사람과 왜 그렇게 힘들어야만 했던걸까. 왜 나는끝끝내 너를 놓치고 말았을까. 

너만은 절대 아프지 말길. 이렇게 무너지지 않길. 곧 다가올 평가도, 실무수습도, 원했던 만큼 올인해서 꼭 원하는 성과 얻길. 그리고 가끔은 아픈 네 이마를 짚어주던 내 손길을 기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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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6. 4. 8. 10:26

2016.04.07.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침을 과자로 때우진 않았을가. 야채 과일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비염은 더 심해지진 않았을까. 본도는 이제 좀 덜 추워졌을까. 순간 순간 내가 생각날까. nothing better은 누구에게 불러주고픈 노래일까. 

나는 아무것도 지우지 못하겠다. 갈 곳 없는 마음 위로 시멘트가 부어졌고, 수많은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 더이상 다가갈 용기도, 물러설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너도 나를 딱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면 네게 나는 이제 그저 멀어진 존재일까. 혹은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숨쉬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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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9. 24. 09:56

2015.09.23.

예의. 그리고 일종의 허탈함.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달리 다룰 길이 없는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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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9. 21. 02:21

2015.09.20.

시카고에 온지도 이제 곧 한 달이다. 내 방에서 보이는 바다같은 호수, 십여분만 걸어나가면 있는 모래사장, 반짝이는 날씨, 환하고 생기 넘치는 경영대 건물, 조금 비싸지만 커피 맛은 끝내주는 카페들, 밝고 따뜻하고 똑똑한 우리 학년 동기들, 챙겨주는 윗학년 친구들, 예쁜 스카이라인, 배움의 즐거움, 치폴레와 과카몰리.. 시카고 온 첫 날부터 도움의 손길들을 많이 받아서인지 이 도시에 정이 빨리 들었다. 솔직히 오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시카고와 잘 맞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는데, 요즘 학교 주변과 다운타운 주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보니 오히려 이 곳만큼 나와 어울리는 곳이 또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워낙에 내가 소속되어있는 곳에 애착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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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이 생활에 빨리 익숙해진 건 온전히 학부 경험 덕분일테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의 시간과 빨리 멀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에서 쌓아왔던 익숙함, 친밀감들이 되려 생경하다. 마치 여행의 기억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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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간장계란밥과 식혜, 자그마한 두 손의 감촉. 밤톨같이 동그란 할머니 머리, 볼살, 반달눈, 화투장 .. 모두 잊지 않을게요. 온전히 기억할게요 모두. 감사하고 죄송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마음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느낌이다.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느낌. 아무도 없는 방에서 두어시간을 울었던 기억. 그 때의 적막. 떠나간 사람을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먹먹함. 죄송스러움. 다른 가족들이 다함께 다독이며 매듭을 짓고 풀 동안 나는 그 어느 것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거리감. 외로움. 빨리 쿼터가 시작되고 정신없는 배움의 고통과 즐거움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속감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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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행복한 만큼 또 미국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공기가 그립겠지. 나의 찬란할 박사 생활!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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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8. 18. 02:10

2015.08.18.

에리히 프롬 - 소유냐 존재냐
영화 <피아노>
이해하는 것과 아는 것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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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8. 9. 02:21

2015.08.09.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시편‬ ‭139‬:‭23-24‬ RNK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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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생활 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딸바보 선배님 땡큐! 기도 꾸준히 해야지. 마음에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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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15. 7. 9. 10:09

2015.07.09.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유리창이 있고, 바깥에는 폭풍우가 쳐요. 방 안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브람스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면 느낌이 어떤가요? 고독해 보이죠. 그럴 때 저는 그 유리창을 깨 버리죠. 폭풍우가 들이치면 고독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돌이 막 날아오니까 집중해야 해요. 세계가 풍경으로 보일 때 우리는 고독한 거에요. 내가 있고, 나머진 다 그림인 거죠. 그리고 세계를 만지고 싶지 않죠. 그냥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보고 싶은 거에요. 보다가 졸리면 자고요. 풍경은 뭐에요? 만지거나 몰입하거나 하는 대상은 아니죠. 그냥 이렇게 내가 내 중심에 있는 거에요.


그런데 풍경의 특징은 하나의 풍경이 다른 풍경으로 바뀌어도 상관없다는 거죠. 하나의 영화가 다른 영화로 바뀌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상대가 '아무래도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헤어져야 될 것 같아' 라고 말하면, 상대를 풍경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죠. '그래,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요. 쿨해요.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니까요. 고독을 느낄 때 고독이라는 것의 일차적 징후는 바로 그런 거에요. 세상이 다 풍경으로 보여요. 세상이 다 죽어 있는 걸로 보이는 거에요. 몰입할 것이 없는 거죠.


(중략)


그런데 나를 야단치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을 풍경으로 볼 때, 나는 어떻게 될까요? 저 창 밖에 있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보호가 될 거에요. 그런데 동시에 그 안에 갇히죠. 고독이 좋다는 분들은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을 거에요. 대신 다시는 세상과 접촉하지 못해요. 지금 상처받은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막을 치는 것은 괜찮아요. 한 번 정도면 되는데, 아예 그 안에 들어가서 사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건 갇힌 거죠. 언젠가는 그 풍경으로 보는 세상을 찢고 나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독은 일회용 반창고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처가 날까 봐 계속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생살에 그렇게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가는 탄력이 있던 피부도 어느 사이엔가 쭈글쭈글해질 겁니다. 한 마디로 아름답지 않게 된다는 거에요.


고독은 병에 비유하자면 자폐증과 같은 겁니다. 자폐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세계가 너무 큰 충격을 줬을 때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요. 가령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었다면 아이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충격을 받으면 안으로 들어간단 말이에요. 나가기 무서우니까 잠근 거에요. 그렇게 아이처럼 잠가요. 보호받으려고요. 고독은 그런 거에요. 마치 방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면 세상이 그림이 돼요. 아이는 바깥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죠. 안에 들어가 있으면, 평과가 오고 봄이 와도 몰라요. 그래서 그 안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요. 언젠가는 열고 나와야 합니다. 언제 열고 나가죠? 이게 고독한 사람이 가진 일종의 병폐인데요, 밖이 안 보이니까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죠. 물론 바깥의 소리는 들려요. 어머니가 혹은 누군가가 그리 해 준다면 좋겠죠. 괜찮다고 계속 안아 주고 따뜻하게 대해 줄 때, 언젠가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에요.


(중략)


고독해지는 내 모습과 계속 싸워야 할 겁니다. 세계를 풍경으로 보는 게 아니라 세계에 몰입하는 걸 찾아야 해요. 그게 상처가 되는 건 맞아요. 촛불이 예쁘면 만지고 싶죠? 그래서 처음에는 그걸 만졌을 테지만 이제 그게 뜨거운 걸 아니까 다시는 안 만지죠. 그러면 촛불은 계속 풍경으로 있는 거에요. 그런데 상처받았다고 바로 떨어져 나가면 나의 세상은 아무 것도 못 만지는 세상으로 변해요. 따뜻한 사람, 혹은 몰입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는 않지요. 스스로 고독을 깨기 위한 적극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춤도 춰 보고 노력은 해 볼 수 있어요. 해 보는 데까진 해 봐야 되겠죠. 어쨌든 방법은 알았으니까요. 그렇게 하다 보면 나를 가두고 있는 그 감옥의 두께가 좀 얆아질 수도 있을 거에요.


(중략)


일단 상처를 전혀 안 받으시려는 분이에요. 촛불을 안 만지려는 분이에요. 전형적인 캐릭터죠. 일종의 고독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 가족, 회사 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일단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게 예쁜 사람 콤플렉스인데요, 나는 착하고 예쁜 사람이어야 하고,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돼요. 이건 아기와 같은 상태인 거에요. 이런 사람들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일을 해요. 주위에서 예쁘다고 하면 일을 하죠.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행동을 하느라 자신이 욕망하는 건 전혀 안 하실 거에요. 그러니까 한 번도 스스로 촛불을 만졌거나 뭘 잡아 보거나 하지 않은 거에요. 자기가 욕망한 것에 몰입하지 않은 겁니다.


(중략)


바보들만 '내가 판단을 한게 잘못 됐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신이 판단한 것을 스스로 부정해 버리죠. 결국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판단할 때 '지금은 이게 맞아, 오케이' 이렇게 해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행동을 개시하죠. 물론 조금 지나고 나서 후회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럼 아닌 거고요. 다르게 행동하면 되죠. 그러니까 예쁜 사람 콤플렉스가 그거에요. 한 번의 선택으로 완벽한 스토리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주저하는 겁니다. 지금 선택이 완벽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지요. (중략) 헷갈릴 때 여러분들이 하셔야 될 게 감각을 믿는 거에요. 확신이라는 것을, 미래로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감각을 믿읏세요. 힘들면 냄새만 생각하세요. 마치 좋았던 이성의 냄새를 기억하는 것처럼, 대개 냄새는 영원히 가요. 감각만 믿으시면 돼요. 머리 쓰지 말고요.


(중략)


'이게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여러분은 결정을 못 해요, 평생. 그러니까 결정을 하고, 거기서 실패도 하고, 또 거기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또 새롭게 결정하고, 거기서 다시 배우는 겁니다.


(중략)


과도한 몰입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몰입이라는 건, 하나를 알게 되면 다른 하나를 못 한다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다른 일을 한다는 건 몰입하지 않고 이것 저것 조금씩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영화에만 몰입하면 안 되고 엄마도 가끔 봐야 되는 거에요. 이런 걸 해 줘야 돼요. 이걸 보통 어른이라고 불러요.


(중략)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지 마세요. (중략) 그래서 중요한 건 미국에 있느냐, 한국에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곳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느냐의 문제에요.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어디를 가더라도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고 중심이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행을 떠났을 때 자꾸 집이 중심으로 남으면, 멀리도 못 떠나고 제대로 떠나지도 못해요.


(중략)


몰입하기 전에 먼저 가치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삶은 제스처가 되어 버려요. 우리가 그래서 잘 살지 못하는 거란 만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거에 몰입이 딱 되면 몰입의 정도만큼 몰입해서 좋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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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기, 2015. 7. 3. 22:37

2015.07.03.

먹먹함. 세상에서 제일로 피하고 싶은, 하지만 가장 중독성이 강한 감정. 사랑하는 은동아.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차곡차곡. 찰랑찰랑. 세상의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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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15. 6. 25. 00:50

2015.06.25.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4‬ RNKSV)

요즘 '사랑'과 '용서'에 관한 짧은 묵상 일정을 따라 말씀을 묵상하는 중인데, 이 한 구절만 5일에 걸쳐 묵상하도록 설계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따끔거리면서 따뜻해지고 숙연해진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 맛이 나는 쌀알 같다. 온전한 사랑은 이토록 포근하고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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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사 11회와 12회에 걸쳐 소개된 에피소드 중, 공효진이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이를 걱정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김수현은 다음 날 곧바로 공효진에게 불이 들어오는 펜을 선물하였고, 차태현은 하루종일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씨름하여 가로등을 수리하였다. 물론 공효진에게 알리지 않은 채.

그저 공효진이 계 탄 로맨틱 에피소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배려'의 의미에 대해 곱씹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어두운 밤 가로등 없는 거리에서 행여나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사랑과 배려를 실천했는데, 한 남자는 휴대용 불빛을, 한 남자는 가로등을 선물한다. 한 남자는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 여자를 웃게 하고, 한 남자는 자신의 배려를 드러내지 않아 여자의 오해를 산다. 물론 극중에선 금세 해결이 되었지만.

보여지는 휴대용 불빛은 분명 상대에게 행복을 주는 배려이며 그 자체로 소중하다. 모두가 뚝뚝하게 티 안내고 가로등만 고쳐주려 한다면 민들레씨처럼 소소한 낭만과 로맨스는 지구상에서 멸종해버릴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로등에 더 끌리고, 차태현의 마음이 더욱 성숙하고 깊다고 느끼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효진이 차태현을 지켜주는 방식 역시 가로등과 같았고, 서로 그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그동안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던 배려는 작은 불빛과 같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조금은 더 크게 보고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묵묵히 상대방 몰래 씨름하여 가로등을 고쳐놓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상대방을 오래오래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23도와 같은 배려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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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내려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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