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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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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9. 16. 02:40

2009.09.15

실망이라는 것은 참 어렵지만 쉬운 일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모순적 특징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아. 아무리 무거운 물체라 해도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이 최대정지마찰력을 넘기고 나면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움직이기 마련 -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 물체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이야기와 같다.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져서 왠만한 힘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 되지만, 혹여나 그 무게를 넘어버릴만큼의 자극이 가해진다면 그 신뢰는 힘없이 미끄러져내려가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실망이 어려운 이유는 신뢰의 무게를 뛰어넘을 만큼의 행동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이유는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이 바로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오후 12시 반, 내가 좋아하는 구름낀 하얀 하늘에 약간 싸늘한 공기. 나뭇잎 푸른빛이 더욱 도드라지는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에 내가 좋아하는 라떼 한 잔. 이 기분 좋은 시간에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방금 네가 그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넘칠 듯 넘칠 듯 했던 물이 마침내 넘쳐 흘렀기 때문이고, 깨어질 것 같지 않던 그릇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며, 튼튼하다 믿었던 둑이 불어난 강물을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자, 이로서 나는 너라는 등장인물을 내 무대에서 퇴장시켰다. 이제 너를 마음 속 깊이 신뢰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마음이 오늘 하늘처럼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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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9. 15. 12:47

2009.09.14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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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씨의 <조용한 일>.

도서관에 앉아 페이퍼를 쓰던 와중에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그래, 네게 고마운 이유는 실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었던 내 곁에 함께 말없이 있어준 네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그렇게 귀기울여 들어주며 묵묵히 그 자리에 있어준 그 마음에 코 끝이 찡해오는 것이다.

고마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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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8. 24. 17:04

2009.08.24

하고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늘 같기만 하다면 얼마나 삶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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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8. 18. 07:10

2009.08.17

세인트루이스 공항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지금껏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들이었다. 4일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반대로 4일이라 믿기 힘들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린 시간. 낯선 땅에 도착하여 설레임과 걱정으로 조심스럽게 적응해나가는 아이들을 보는데, 작년의 내가 참 많이 떠올랐다. panel로서 조언을 줄 때도, leader로서 그룹 아이들과 한 마디 한 마디 대화를 나눌 때도, 작년의 나와 내 리더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다. 내년엔 또 이 아이들이 그 다음해 신입생을 맞아주는 리더가 되어있겠지.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걸 그려보면 마음이 간질간질한 게 기분이 참 묘하다. 

물론 지난 1년간 내가 받은 많은 도움들을 이번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아랫 기수에게 마음껏 돌려주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생으로 들어와 1년을 잘 적응한 만큼, 자, 이제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봐, 하는 일종의 도전장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나의 이런 모습이 다른 신입생들에게도 격려의 메세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두려워했었으니까, 천성적으로 모험이란 걸 잘 즐기지 못했던 내가 처음으로 미국이란 땅에 발을 딛었을 때 그 느낌이 어땠는지 생생하게 기억하니까, 자, 이것봐- 그랬던 나도 이렇게 잘 살아남아서 너희 앞에 당당히 섰잖아, 하면서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동시에 아직도 자주 주저주저하고 움츠러드는 나 자신의 어깨를 펴주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만 그저 신입생을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요 며칠간의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주었는지. "Thanks for being our leader" 이라 말하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co-leader Miranda를 비롯하여 서로를 격려하며 끝까지 열심히 해낸 우리 explore leaders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리고 미국에 와 처음으로 제대로 갖는 휴식 시간에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블로그를 쓰고있는 지금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역시 이래서 경험은 힘들어도 욕심내서 해야하는거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와닿는 말이다. 덕분에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 :)

내일부터 시작하는 Discover도 힘내서 해야지. 그리고 나면 사랑하는 친구들 보러 클리블랜드로 고고. 화이팅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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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바쁜 덕분에 그새 살도 좀 빠졌고 (오예ㅋㅋㅋㅋㅋ), 오자마자 영어밖에 안 써서 나름 영어에도 적응했고, 시차도 완벽히 적응했고, 남는 시간이 없어 혼자 센티해질 일도 없었고, 나름 부수적인 좋은 점들도 많았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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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싱글. 무려 새로지은 기숙사. 지은지 얼마 안 되서 아직 먼지도 많고, 공사가 여전히 진행중이라 시끄럽기도 하고, 내 방문 카드키는 여전히 먹통이지만, 그래도 매트리스도 짱 좋고, 완전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작게나마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아, 내년엔 정말 오프캠 살아야지. 기숙사 생활은 5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내 맡겨놓은 짐들은 도대체 언제 돌려줄거니 유트러킹 아저씨야. RA 담요 빌려서 쓴지도 일주일이 다 되어가서 미안해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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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7. 26. 12:35

2009.07.26

Freud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의 마음은 원본능이라 불리는 id, 원본능이 무작정 터져나오지 않게 감시하는 '이성'의 역할을 하는 superego,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ego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이론에 근거하여 그동안의 나를 설명하자면 나는 superego, 즉 초자아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원본능인 id를 너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아. 사회적 규범, 도리, 예절, 이런 거에 나의 원본능이 눌리고 눌려 숨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내 안에 있는 나쁜 마음들이 싫고 싫어서 없애고 없애려만 하다보니 나 스스로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고, 내 마음이 진짜로 뭘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을 때가 종종 있었다.

얼마전에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이제 내가 그 거대했던 superego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superego가 많이 작아졌다는 거지. Freud는 그의 이론에서 id, ego, superego는 한 덩어리여서 id나 superego가 작아진 만큼 ego가 성장한다고 했다. ego가 튼튼해지는 만큼 말 그대로 '자아'가 튼튼해지는 거라고. 이 사람의 말을 모두 믿을 수야 없는 거지만, 난 그동안 superego가 너무 커서 ego가 상대적으로 너무 약했던 것 같아. superego가 약해진 만큼 ego가 조금 기를 펴고 나니까 거대했던 superego를 막아줘서 id역시 좀 살아나는 느낌....??? 휴 뭐 이론적으로는 이렇다지만 어쨌든 내가 느꼈던 건, 이제는 내가 뭘 원하고 뭘 참아내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과, 내 마음은 이렇지만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난 이렇게 하는거야 하고 분명히 구분하여 인식하게 되는 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족하고 나쁜 내 모습을 애써 무시하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 마음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해주는 거.

그래서 마음이 정말 가볍고 즐겁고 행복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때문인지, 태생이 그러한건지, 어쨌든 부러질 듯 약했던 자아가 이제야 정말로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이 기분좋은 해방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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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척들을 만나면서도 느꼈지만, 사람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건 정말로 모른다. 만나는 내내 마치 미국으로 놀러가서 좋겠다는 듯이 얘기하는 언니들한테 솔직히 많이 서운했지만, 뭐 나도 정작 언니가 하는 바리스타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까페 장사가 얼마나 골치아픈 일인지 잘 모르니까. 그냥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그래도 왠지 그 모임을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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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진심으로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다. 아 달콤하지만 뒷감당 안되는 유혹. 먹고도 살 안찌는 사람들, 살찌는 게 목적인 사람들,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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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7. 10. 17:07

2009.07.10

무릎팍 도사 발레리나 강수진 편을 봤다. 불혹의 나이에도 그 변하지 않는 열정을 같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해맑을 줄이야. 베일 것처럼 자기 자신에 철저한 면모와는 상반되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아이같은 그 모습에 같이 웃고 울었다. 모든 한계를 뛰어넘고 정점에 오른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갖는 힘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대단하다. 내가 원하는, '삶 자체가 감동인' 그러한 사람들. 인간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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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께서 어렸을 때부터 내게 곧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무엇이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해보아야 한다고. 그랬던 적이 있냐고. 난 내 나름대로 그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당당히 '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지금 유학 생활을 1년 마치기까지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동이 틀 때까지 공부해본 날도 많았고, 너무 힘들어 혼자 계단에 쪼그려 앉아 숨이 턱턱 막히도록 울어본 날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힘든 날들을 꾸역꾸역 이겨내며 지내온 그 모습에 열정과 희열을 느꼈고, 때로는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상을 주고 싶은 때도 있었다. 참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난 이런 경험들을 계속 떠올리며 지금의 나 자신에게 안주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 내가 나중에 토크쇼에 출연할 만큼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때, 이런 경험들을 당당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이었는지.

"단 하루도 100%로 살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라고 말하는 강수진을 보며 진공 상태에 빠진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면 40년동안 매 순간을 100%로 살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100%로 살아온 날은 과연 20년 중 몇 일이나 될까. 아니, 있기는 있을까. 이미 난 저 프리마 발레리나처럼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매일을 100%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없다. 버려온 시간이 너무 많아.

'왜 굳이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아픔을 친구처럼 느끼지 않고서는 무용수가 될 수 없다는 강수진의 말처럼, 어느 누구도 치열함과 그에 따르는 괴로움을 끌어안고 즐길 수 없다면 정점에 오를 수 없겠지. 여전히 매일을 100%로 살아나갈 자신은 없지만, 그리도 훗날 내 인생의 반은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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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6. 29. 16:12

2009.06.29

오랜만에 혼자 집에서 소박하게 밥을 챙겨먹고 나른한 햇살에 졸다가 어제 선물로 받은 장영희씨의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집어들었다. 수필집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하듯이, 가볍지만 담백하고 기분좋은 책이었다. 한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시원하게 들이키는 냉면국물처럼, 뜨끈하고 든든한 밥은 아니지만 텁텁해진 입 한 번 개운하게 비워내기 딱 좋은 별미같은 거. 겹겹이 묻은 유화가 어딘가 너무 답답하고 두꺼워보일 때 생각나는 투명한 수채화 같은 거.


고 장영희씨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학원 선생님께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선물로 주셨을 때였다. 그 전부터 내가 장영희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소박하고 따뜻한, 담담하고 깨끗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 1급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이 놀랐던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글은 사람을 나타내는 창이어서, 한 많은 사람의 글에서는 말 못할 서글픔이나 독기가, 슬픔이 가득한 사람의 글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그 눈물이 배어있다. 그리고 사람이란 동물이 참 예민하고 섬세하여 그러한 작고 미묘한 부분들을 보통 쉽게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의 글 어디에서도 삶과 사회와의 사투를 벌이며 느꼈을 법한 좌절이나 공격적 투쟁심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체가 이미 감동적이었다.


후에 같은 선생님께 선물로 받은 <생일>, 오늘 읽은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고도 내가 같은 울림을 받았던 건,  작가의 글 전체에서 배어나오는, 세상과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넉넉함과 단단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련을 열정과 용기로 승화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인간 에너지'의 표본. 작은 생채기에 아파하고, 조급하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게 안철수씨나 장영희씨의 이야기는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담대하게 세상을 바라보라는 메세지가 된다. 아, 삶 자체가 메세지가 되는 삶. 나도 언젠가 내 삶 자체만으로도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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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6. 20. 09:19

2009.06.20


슬럼프


그래, 자네가 요즘 슬럼프라고? 나태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그런 날들이 하루이틀 계속되면서 이제는 스스로가 미워질만큼, 그런 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왜, 나는 슬럼프 없을 것 같아? 이런 편지를 다 했네, 내 얘길 듣고 싶다고.

우선 하나 말해 두지, 나는 슬럼프란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그냥 ‘게으름’이란 말을 쓰지.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지금부턴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할께.

나는 늘 그랬어. 한번도 관료제가 견고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지. 하다 못해 군대도 학교(육군제3사관학교)였다니까? 그렇게 거의 25년을 학생으로 살다가, 어느 날 다시 교수로 위치로 바꾼 것이 다라니까? 복 받은 삶이지만, 어려운 점도 있어. 나를 내치는 상사가 없는 대신,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내 삶이었거든. 그래서 늘 힘들었어, 자기를 꾸준이 관리해야 된다는 사실이. 평생을 두고 나는 ‘자기관리’라는 화두와 싸워왔어.

사람이 기계는 아니잖아… 감정적인 동요가 있거나, 육체적인 피로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어쩌다 보면 좀 게을러지고 싶고, 또 그게 오래 가는 게 인지상정이잖아… 교수라는 직업이 밖에서 점검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슬럼프, 아니 나태에 훨씬 쉽게 그리고 깊게 빠져. 내가 자주 그렇다니깐? 자네들에게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난 나태란 관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자전거는 올라타서 첫페달 밟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지. 컴퓨터 켜기도, 자동차 시동걸기도,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정지상태를 깨는 첫 힘을 쏟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관성이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근데, 문제는 말야, 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실은 자네도 슬럼프를, 아니 오랜만의 연속된 나태를, 지금 즐기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어. 딱 여기까지만 읽을 사람을 위해 덕담까지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됐지? 잘 가.

하지만, 위에 쓴 덕담은 거짓말이야.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그러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까, ‘정말’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 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

보통 ‘슬럼프’ 상태에서는 정신이 확 드는 외부적 자극이 자신을 다시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게 되거든? 어떤 강력한 사건의 발생이나, 친구/선배의 따끔한 한 마디, 혹은 폭음 후 새벽 숙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그런 걸 느낄 때까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학을 유보하거든? 땍!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런 자극은 없어, 아니면 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란 말야. 그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생활의 실천으로 옮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자극이 백번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단 말야.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내가 자네만할 때는 말이지, 가을이면 특히 11월이면, 감상적이 되고 우울해지고 많이 그랬거든? "자 11월이다, 감상적일 때다" 하고 자기암시를 주기도 하고… 그래 놓고는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술도 마시고, 음악을 듣고… 그러면 더 감상적이 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은근히 즐겼어. 딱지가 막 앉은 생채기를 톡톡 건드리면 따끔따끔 아프지만 재밌잖아? 내 젊은 날의 버거움이란 그런 딱지 같은 거였나봐.

나도 철이 들었나보지? 차츰 해결법을 찾았어.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된거지. 일조량의 부족, 운동량의 부족, 술/담배의 과다… 즐기지 않는 감정적인 문제에 근원이 있다면 그런 거야. 난 정말 감정에서 자유롭고 싶으면 한 4마일 정도를 달려. 오히려 술도 되도록 적게 마시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해. 꽤 효과 있어.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 문제야. 나태는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오거든. 선생님 같은 나이에 무슨 새로운 목표가 있겠니? 내 목표란 '좋은 선생' '좋은 학자' 되는 건데, 그 '좋은' 이라는게 무척 애매하거든. 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만, 너무 멀면 동인이 되기 힘들어.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대개 일주일이나 한달짜리 목표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오늘' 해결하면 되. 늘 '오늘'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뭐 이런 차원이 아니야. 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되. 그런 오늘들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모이거든, 나태가 관성인 것처럼 분주함도 관성이 되거든.

사실은 선생님도 먼 나라에 혼자 떨어져서 요즘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 그래서 물리적인 생활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 육체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늦게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고, 술 마시지 않고, 햇빛 아래서 많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꼭 1시간은 색스폰 연습하고, 몇 글자라도 읽고, 3페이지 이상 글쓰고… 나는 잘 알거든,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걸. 여러 번 경험했거든.

힘 내. 얘기가 길어졌지? 내가 늘 그래. 대신 긴 설교를 요약해 줄게. (선생님답지?)

일. 나태를 즐기지 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마.
사.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그거 알아? 모든 것은 흘러. 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 질거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래.

잘 자.
(아니, 아직 자지 마. 오늘 할 일이 있었잖아?)

새임.

(2005. 2.)

                                           <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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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녁아 미안 허락없이 가져왔어 ㅋㅋㅋ


짧다면 짧을 일주일의 슬럼프 후에 맞는 산뜻한 토요일 아침 그리고 이 글. 어젯밤 유난히 기분좋게 잠이 들었던 이유가 이거였나봐. 한동안 내 신조였던 "불안하면 무엇이든 하라" , 이 간단하지만 명쾌한 해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몸은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도 마음이 게을러져 움직이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그 진공의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안락을 찾고있었던 거지. 이제 몸도 마음도 다시 바쁘게 생활해야겠어. 감사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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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6. 19. 19:13

2009.06.19

다시 정진하라고, 다시 낮아지라고, 다시 겸손해지라고 말씀하시는 거 알아요. 커다란 계획 앞에 저는 아무런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제가 오랫동안 쌓아놓은 것도 한 순간에 가져가실 수 있는 분이라는 거 알지만, 오늘은 그게 사랑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네요. 한 주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감사하며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제 자신을 너무 사랑하나봅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나봐요. 그래도 돌아가야할 끈 만큼은 마음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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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음이 비워졌으니 이제부터 모든 것은 새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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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09. 6. 12. 14:01

2009.06.12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내 삶을 차지하는 기억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말과 같다. 새로운 기억이 하나하나 더해져갈수록 그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기억이라 할지라도 노랫말 하나, 어느 한 장소, 작은 몸짓 하나가 일으키는 연상 작용은 생각보다 깊고 끈질기다. 꼭 단축번호가 늘어나는 것 같아. 생각없이 꾹 누르면 어느새 누군가의 전화번호로 연결되는 단축번호 같은 거. 생각없이 한 몸짓에 어느새 머릿속이 그 당시의 기억으로 가득차게 된다.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그 행동을 하는 일은 없겠지.


내가 나얼의 '한번만 더'를 우울해하지 않고 듣게 된 건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제 감정의 동요없이 들을 수는 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울지 않고 빙긋 웃을 수 있게 됐다는 것 뿐이지, 노래에 박힌 그 기억을 밀어낼 수 있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없어. 기억에 노래를 빼앗긴 느낌이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난 그 노래를 마냥 좋아라하며 듣기만 했을텐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노래들이 생겨나고 있고, 물론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노래들도 많지만, 난 가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기억에 빼앗겨버린 노래들이 아깝고 안타깝다. 그리고 앞으로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백지화되지 않을 내 기억이 가끔은 얄밉기도 하다.


노래에 담긴 추억들은 듣지 않으면 떠올리지 않을 수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 박혀버린 기억들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추억할 수 있는 순간들에 감사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 기억의 무게가 버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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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많이 아프다. 이거 진짜 나을 수는 있는 건가 슬슬 의심이 든다. 무엇이든지 한 번 고장난 이후에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가 힘든가봐. 진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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