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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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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5. 9. 21. 02:21

2015.09.20.

시카고에 온지도 이제 곧 한 달이다. 내 방에서 보이는 바다같은 호수, 십여분만 걸어나가면 있는 모래사장, 반짝이는 날씨, 환하고 생기 넘치는 경영대 건물, 조금 비싸지만 커피 맛은 끝내주는 카페들, 밝고 따뜻하고 똑똑한 우리 학년 동기들, 챙겨주는 윗학년 친구들, 예쁜 스카이라인, 배움의 즐거움, 치폴레와 과카몰리.. 시카고 온 첫 날부터 도움의 손길들을 많이 받아서인지 이 도시에 정이 빨리 들었다. 솔직히 오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시카고와 잘 맞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었는데, 요즘 학교 주변과 다운타운 주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보니 오히려 이 곳만큼 나와 어울리는 곳이 또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워낙에 내가 소속되어있는 곳에 애착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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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이 생활에 빨리 익숙해진 건 온전히 학부 경험 덕분일테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의 시간과 빨리 멀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에서 쌓아왔던 익숙함, 친밀감들이 되려 생경하다. 마치 여행의 기억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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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간장계란밥과 식혜, 자그마한 두 손의 감촉. 밤톨같이 동그란 할머니 머리, 볼살, 반달눈, 화투장 .. 모두 잊지 않을게요. 온전히 기억할게요 모두. 감사하고 죄송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마음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느낌이다.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느낌. 아무도 없는 방에서 두어시간을 울었던 기억. 그 때의 적막. 떠나간 사람을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먹먹함. 죄송스러움. 다른 가족들이 다함께 다독이며 매듭을 짓고 풀 동안 나는 그 어느 것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거리감. 외로움. 빨리 쿼터가 시작되고 정신없는 배움의 고통과 즐거움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속감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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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행복한 만큼 또 미국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공기가 그립겠지. 나의 찬란할 박사 생활!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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