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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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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2014. 12. 31. 17:26

2014.12.31.

어느덧 2014년의 마지막 날이다. 청마의 해가 밝았다며 여기저기서 파란 말을 모티브로 한 광고들이 눈에 띄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일이면 파란 양의 해다. 파란 양..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억세게만 느껴졌던 올 해 보다는 조금은 더 부드럽고 포근한 한 해일 거라 기대해본다.

친구와 우스갯소리처럼 한 이야기였지만, 올 한 해는 달력 한 장 한 장을 고이고이 접어 화르르 불꽃을 피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힘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팍팍하고 힘들었는지 - 그리고 아직도 그러한지 - 잘 모르겠다. 진로를 결정하고, 그에 맞춰 준비하고, 논문을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힘들다거나 가장 멘붕할 만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고 지치기만 했을까.

오늘 엄마와 아침을 먹다 문득 깨달은 것은, 한 해 한 해 지남에 따라 책임감은 늘어가고 표현은 줄어든다는 것.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역량과 혼자서도 해내야 한다는 기대, 그리고 변화하는 친구 관계 속에서, 아직 어느 한 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나는  딱 그만큼 버겁고 외로웠던 것 같다. 

고 3 시절에는 기숙사 방에만 들어오면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내 마음의 capacity가 크지 않아 그를 넘어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내려놓고 흘려보낼 수 있었다면, 이제 나는 내려놓고 싶을 때에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시시콜콜 모든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없이도 어느정도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원했든 원치않았든 나는 그래야만 하는 일련의 상황속에 놓여졌고, 깨어지지 않고 단단해진 나 스스로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쉬어야할 때 쉬어가는 방법을 잊었고, 기대야할 때 기대는 것에 서툴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 한 해, 정확히는 논문 주제를 잡은 5월 전후부터, 마음 푹 놓고 쉬어본 날이 언제였던가. 하고싶은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나이가 되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제발 세상이 2주만 멈췄으면, 2주만 아무 생각 안 하고 쉴 수 있다면, 정신없이 돌진해오는 데드라인들의 홍수에서 딱 2주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여름에 아팠었고,그래서 난 그 홍역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 시간을 통해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막 깨달아가는 걸음마 단계인지라 마음은 어느새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버렸다. 첫 술에 배부르랴. 세상 모든 게 정반합인걸.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으니 마음이 다시 중간 지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잘 어르고 달래면 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자연스럽게 그 균형이 회복될거라 기대하고 소망한다.  

꾹꾹 눌러담은 눈물이 얼음이 되었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웃으며 보내야하는 지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속없이 해맑기는 이미 틀린 것 같지만, 많은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도 꼬임 없이 밝은 사람이고 싶다. 어두워지지 않고 깊어지고 싶다. 그래서 이유를 모르겠는 힘듦과 외로움이 그 이유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왕 주저리주저리 어두운 얘기만 잔뜩 쓰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

후회없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어서, 아팠지만 더 크게 아프지 않아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 나눌 수 있어서, 성장할 수 있어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어서 감사했던 올 한 해. 내년엔 마음에 늘 감사와 사랑이 넘쳐났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온전한 따뜻함의 통로가 될 수 있었으면.  새해 복 많이 받자 예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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